사유하는 도시의 풍경 ―마키 후미히코, 건축가 1부

건축 / ESSAY

사유하는 도시의 풍경 ―마키 후미히코, 건축가 1부

도시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마키 후미히코의 군집 형태와 오쿠를 통해, 건물 사이의 관계와 시간이 만드는 풍경을 읽는다.

작성 수정 by ivoryshi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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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개별 건물의 모양보다 거리와 사람의 관계로 읽고 싶은 독자. 메타볼리즘·군집 형태·오쿠를 처음 접해도 사례를 따라 읽을 수 있다.

도시를 걸을 때 기억에 남는 것은 반드시 가장 크고 화려한 건물만은 아니다. 길에서 살짝 물러난 입구, 건물 사이로 보이는 나무, 잠시 머물 수 있는 작은 마당이 한 동네의 인상을 만들기도 한다. 마키 후미히코(Fumihiko Maki, 1928–2024)의 건축을 읽는 출발점도 여기에 있다. 그의 작업은 건물이 얼마나 강하게 자신을 드러내는가보다, 주변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묻게 한다.

사유하는 도시의 풍경 ―마키 후미히코, 건축가 1부

1. 성장하는 도시를 상상하다

마키는 1960년 일본에서 등장한 메타볼리즘 운동에 참여했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를 고정된 완성품으로 설계할 수 있는가. 이 운동의 건축가들은 건축과 도시도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같은 질문을 공유한다고 해서 답까지 같았던 것은 아니다.

메타볼리즘은 생물의 신진대사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건축과 도시의 변화 가능성을 강조한 운동이며, 참여 건축가들의 실천이 모두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

철거 전 메타볼리즘의 상징적 건물 나카긴 캡슐타워, 구로카와 기쇼 설계
철거 전 메타볼리즘의 상징적 건물 나카긴 캡슐타워, 구로카와 기쇼 설계

마키의 작업에서 눈여겨볼 점은 거대한 구조의 인상보다 작은 요소들이 맺는 관계다. 길과 마당, 개별 건물의 배치가 서로를 어떻게 연결하는가를 살피면 그의 생각이 더 잘 드러난다. 도시 전체를 단번에 바꾸는 설계보다, 이미 존재하는 삶의 틈에 새로운 공간을 덧붙이는 태도로 읽을 수 있다.

젊은 시절 마키 후미히코
젊은 시절 마키 후미히코

2. 군집 형태: 건물 사이에서 생기는 질서

군집 형태(Group Form)는 여러 건물을 단순히 모아 놓는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부족하다. 각 요소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통로, 빈 공간, 크기와 방향을 통해 전체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방식에 가깝다. 한 건물의 정면만 바라보던 시선을 건물과 건물 사이로 옮기게 하는 개념이다.

Hillside Terrace 전경
Hillside Terrace 전경

도쿄 다이칸야마의 힐사이드 테라스는 이를 살펴보기 좋은 사례다. 1969년 첫 단계가 완성된 뒤 오랜 시간에 걸쳐 확장된 이 복합 공간에서는 서로 다른 시기에 지어진 건물과 작은 마당, 보행 통로가 하나의 도시 풍경을 이룬다. 한 번에 지어진 거대한 기념물과 달리, 시간이 설계의 일부로 들어온다. 새로운 부분이 더해져도 이전의 공간이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힐사이드 테라스의 초기 단계는 1969년에 완성됐다. 전체를 하나의 준공 연도로 읽기보다 단계적으로 확장된 프로젝트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프리츠커상 공식 소개.

2. 군집 형태: 건물 사이에서 생기는 질서

3. 오쿠: 작은 공간에 깊이를 만드는 법

오쿠(Oku)는 깊숙한 안쪽을 뜻하는 일본의 공간 개념이다. 여기서 깊이는 입구와 끝 사이의 거리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한 겹을 지나 다음 공간을 발견하고, 시선과 동선이 조금씩 바뀌는 과정에서 느끼는 깊이도 포함한다. 넓지 않은 공간도 여러 문턱과 전이 공간을 통해 풍부하게 경험될 수 있다.

복도와 테라스, 중정은 그래서 목적지로 가는 길 이상의 역할을 한다. 거리의 소음에서 잠시 떨어지고, 빛의 밝기가 달라지며, 안쪽 풍경이 조금씩 드러나는 곳이다. 마키의 공간을 이런 순서로 읽으면 건축은 한 장의 사진보다 몸의 움직임에 가까워진다. 문을 통과하는 순간마다 공간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전이 공간은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을 잇는 중간 영역이다. 이 글에서는 복도·테라스·중정을 단순한 통행 공간 이상으로 읽는다.

4. 빛과 재료가 도시를 받아들이는 방식

스파이럴의 조감도
스파이럴의 조감도
마키의 스파이럴 내부
마키의 스파이럴 내부

유리와 금속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이 재료들은 단단한 외피이면서 빛과 주변 풍경을 받아들이는 표면이다. 반사와 투과, 그림자가 겹치면 건물은 독립된 물체로만 남지 않는다. 하늘의 밝기와 거리의 움직임이 외관의 일부가 된다.

스파이럴의 경사로에서는 이동하는 과정이 공간을 읽는 순서가 된다. 도쿄 체육관의 분절된 형태는 큰 규모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보게 한다. 뉴욕의 4 월드 트레이드 센터까지 함께 떠올리면, 마키의 관심을 하나의 고정된 모양으로 요약하기 어렵다. 오히려 서로 다른 장소에서 규모와 빛, 주변과의 관계를 조절하는 태도가 이어진다.

도쿄 체육관
도쿄 체육관

5. 완성된 건물보다 오래가는 관계

마키의 작업이 남기는 질문은 단순하다. 좋은 건축은 완공된 날의 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사용자가 바뀌고 주변에 새 건물이 들어서도 길과 마당이 계속 쓰인다면, 그 관계 역시 건축의 성과일 것이다.

나는 힐사이드 테라스를 하나의 완결된 오브제보다 시간이 쌓일 수 있는 틀로 읽고 싶다. 건축가가 모든 장면을 미리 결정하는 대신, 사람들이 다음 장면을 만들어 갈 여지를 남기는 것. 마키를 통해 바라본 도시는 그렇게 조금씩 완성되면서도 끝내 닫히지 않는 풍경이다.

참고한 자료

프리츠커상 · Fumihiko Maki, 1993년 수상자 소개

Harvard GSD · Remembering Fumihiko Maki, 2024

건축가 연재 함께 읽기

도시와 건축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읽는 연재입니다. 다른 건축가의 작업과 비교하면 이 글의 질문도 더 선명해집니다.

2부 · 램 콜하스 — 프로그램과 도시

3부 · 프랭크 게리 — 형태와 감각

4부 · 비야케 잉겔스 — 즐거움과 지속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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