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Thirst) 1부

영화 / ESSAY

박쥐 (Thirst) 1부

흡혈귀의 욕망에서 죄와 선택의 문제를 읽다

작성 수정 by ivoryshi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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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본 뒤 다른 해석과 배경을 함께 읽고 싶은 독자를 위한 글이다.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박쥐 (Thirst) 1부

박쥐 (박찬욱 감독, 2009)

양자역학에 대한 표현은 영화적 비유다. 흡혈귀의 생사를 실제 물리학의 중첩이나 얽힘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오래된 흡혈귀 이야기

뱀파이어라는 소재는 수도없이 재창작되는 사골같은 소재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대표적인 흡혈귀 소설이지만 최초는 아니다. 그보다 앞서 《뱀파이어》와 《카밀라》 같은 작품이 있었다. 반헬싱이라는 인물도 여기서 등장을 하며, 비이성적이며 초자연적인 존재인 드라큘라가 인간들에게 공포를 안기는 것이 호러소재로 재탕 될 수 있었던 요인이다. 박쥐는 이러한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지 않다. 오히려 박쥐의 소재는 공포가 아니라, 현대에서 수도 없이 재탕되는 다른 소재들에 더욱 집중되어 있다.

박쥐 (Thirst) 1부

《헬싱》의 아카드는 드라큘라를 다시 해석한 인물이다. 다른 드라큘라 각색의 사랑 이야기까지 같은 설정으로 섞기보다는, 여기서는 흡혈귀에게 남은 인간적인 욕망을 《박쥐》와 비교해 보려 한다.

미나하커에 대한 묘사는 헬싱에서 많이 등장하지 않으며 반면, 헬싱의 수장 인테그라는 수도 없이 등장하는데 그 인테그라는 헬싱이라는 기관에 어릴적부터 운명이 묶여있는 존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박쥐의 태주의 삶이 미나하커보다 인테그라로 더 비추어지기도 한다.

아무튼 헬싱의 이야기 자체에 모티브가 되는 소재는 수도 없이 많지만 (나치와 오컬트) 그 중에서도 드라큘라의 사랑이 배경이 된다는 점은 굉장히 흥미롭다. 박쥐 또한 사랑이 소재이지만 그 사랑이 간음인 점은 재미있다. 이 영화 속에서 이 간음을 하는 주체가 신부인 점은 더욱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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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 나무위키

원죄와 금지

신이 만든 죄는 현대가 되어도 거의 대부분 고스란히 죄가 되어있다. 신이 만든 죄가 어떻게 현대사회 인간들의 법률에도 죄가 되었을까? 먼저, 죄란 무엇인지 부터 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죄는 지켜야만 하는 것을 벗어나는 행위를 말한다. 개신교에서는 죄라고 하면 ‘원죄’를 떠올린다. 에덴에서 뱀의 말에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이다. 흔히 선악과라고 하는 이 원죄의 열매는 에덴의 정중앙에 위치해있다. 그러면서 신은 먹지 말라고 한다.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구약 창세기 3장

(대한성서공회)

에덴의 중앙에 눈에 띄게 놓았으면서 이것을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의 손에 닿는 위치에 아이가 갖고싶어 할만한 물건을 두고 만지면 안돼 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신은 아주 심술 맞거나, 정말 유일한 하나님이라면 스스로에게 내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 년놈들이 얼마나 오래 참을까?’ 계속해서 성경의 선악과 구절 보자면.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구약 창세기 3장

(대한성서공회)

여기서 하나님의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는 사실이다. 에덴에서 지내는 동안 아담과 이브는 영생 혹은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테니, 그래서 뱀은 거짓으로 이브를 유혹한다. 하지만 이브의 마음을 움직인 뱀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다.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진 그들은 선악을 구분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졌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은 죄를 선악과를 먹기도 전에 저지르고 만다. 바로 교만이다.

이 교만은 모든 원죄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존재를 했다. 뱀의 유혹이 있었다고 하지만 아담과 이브는 안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이 아닌, 신과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에서 열매를 먹었다. 이는 영화 박쥐의 초반 부분에 잘 나온다. 신부의 역할에 충실한 상현은 자신의 육신을 불태워 희생하고자 하였다. 영화 초반 부분 ‘자살과 순교는 같은거다’ 라는 대사는 순교자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일것이다. 이렇듯 상현은 영화 초반부터 성경의 입을 빌려, 신과 가까워지려는 교만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상현은 마지막에는 태주를 데리고 태양에 타 죽는 자살을 선택하고 마는데 이는 다시 영화 초반부의 자살과 순교는 같다. 라는 말의 복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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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에서 쫓겨난 뒤

낙원추방

아담과 이브의 에덴추방 이미지는 과거부터 많이 사용되어온 메타포이다. 신이 만들어낸 신을 위한 공간에서 단지 먹고 자고 할 뿐이었던 아담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현대인의 관점으로 봤을때는 단순한 최애 펫 일수도 있다.

박쥐는 인간의 억압과 자유에 대한 이미지 또한 많이 등장한다. 신부로 지내면서 자신의 의지로 병자들을 돕고자 나선 상현은 신에게 억압되어있었고 결국 자살로 자유를 되찾았다. 그가 흡혈귀가 된 것은 신적인 관점에서 봤을때는 자유를 찾은 것이 아니다. 반면 태주는 흡혈귀가 되면서 자신의 자유를 찾으며 이를 만끽한다. 둘은 그런 점에서 자유에대한 관점 조차 다른 사람들이었다. 물론 신적인 관점에서 태주 또한 신의 손아귀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상현은 대신부를 살해하기 전 사죄경을 받고 그를 죽일만큼 신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자유의지를 묻는 영화

이를 통해 우리는 자유의지가 존재하는가? 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 필요가 있다. 신학적 관점에서 봤을때 원죄와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가 있다. 선악과의 존재 자체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선악과를 먹은 것은 분명 교만이었다. 그 교만은 아담과 이브가 신과 같이 눈이 밝아지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욕망은 자유의지 이전에 있는 것이다. 이 욕망을 자유의지 이전으로 두고 본다면 욕망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자유의지가 있는지, 세계가 결정론적으로 구성돼 있는지는 내가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양자역학만으로 자유의지가 없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아래에서 양자역학을 떠올리는 것은 영화 속 존재의 모순을 읽기 위한 비유에 가깝다.

(만화 헬싱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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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 슈뢰딩거 준위

양자역학이라는 비유

헬싱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수 많은 이들의 생명 (피)을 흡수한 아카드 (드라큘라 백작)를 이기기 위해 슈뢰딩거 준위는 자신의 목을 잘라 생명을 전부 개방한 아카드의 피 속에 들어가 버린다. 여기서 슈뢰딩거는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체셔고양이가 모티브다. 많은 생명들 속에 양자중첩 상태에 있는 슈뢰딩거가 표함 되면서 아카드 또한 그러한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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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Outer wilds, 양자역학에 대해 알고싶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게임 자체만으로도 추천.

이는 게임 아우터와일즈에 더 자세하고 흥미롭게 표현되어있는데 이 게임은 자체가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과학자가 아니라 이에 대해 다 이해를 할 수는 없지만, 양자역학이 단순히 철학이거나 SF적인 환상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게임을 통해 입문을 할 수가 있을 정도이다.

흡혈귀는 죽음을 거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처럼 그려진다. 나는 여기서 삶과 죽음이 겹치는 이미지를 본다. 다만 이것은 실제 물리학의 양자 중첩이나 얽힘과 같은 현상은 아니다.

미래의 선택을 알 수 없다는 일상적인 불확실성과 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다르다. 영화가 던지는 선택의 질문은 그런 구분을 해도 남는다.

박쥐 (Thirst) 1부

박쥐에서 태주역 김옥빈

피를 마신다는 윤리

흡혈귀는 전통적으로 피를 빨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피를 마시는 행위는 그 자체만 놓고 보자면 그들에게 섭식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 생명유지 뿐 아니라 혀에 느껴지는 미각을 위해서 많은 동식물들을 소비한다. 이는 동식물들이 생존에 필요한 섭식을 하는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분명 인간은 자신의 쾌감을 위해 활동을 했으며 이는 소비에 더욱 가깝다. 상현은 직접 살해하는 일을 피하려고 코마상태에 있는 환자의 피를 마시거나 냉장보관된 피를 먹거나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의 피를 마신다. 하지만 태주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사냥을 하고 필요 이상의 피를 소비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상현의 모습이 보다 인간스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흡혈귀는 인간보다 분명 강하다. 인간이 다른 동식물들 보다 고등하며 보다 강하다는 전제하에 소비를 한다면 흡혈귀 또한 안그러리란 법은 없다.

누가 더 인간적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겠다.

-2부에서 계속

같은 연재에서 읽기

박쥐 (Thirst)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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